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문단 편집) == 가계 == 호메이니는 하디제 사가피와 1929년 결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 모스타파(슬하 2명)는 1930년생으로 이란 혁명 이전인 1977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3남 아흐마드(슬하 3명)는 1946년생으로 이란 혁명 당시 아버지를 따라 혁명에 참여했다. 1989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으며 1995년 불과 49세로 별세했다. 차남 사디크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 [[파일:/image/001/2015/12/18/AKR20151218191600009_01_i_99_20151218210905.jpg]] {{{-1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회견하는 하산 사이이드 루홀라 모스타파비 무사비 호메이니}}} 2015년 12월에는 호메이니의 손자이자 아흐마드의 아들인 1972년생 하산 호메이니가 이란 정치계에 입문한다고 해서 꽤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8063242|기사]] 그는 2016년 2월에 치러지는 이란 율법 전문가 회의(Assembly of Experts) 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자 등록을 했다. 율법 전문가 회의는 88명으로 이뤄진 회의인데 이 자리는 고위급 성직자만 입후보할 수 있으며 국가 최고지도자의 후계자 선출 권한을 갖고 있는 권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자리다. 보수파의 수장인 할아버지와 반대로 개혁 진보적이고 어릴적 축구선수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출마 신청은 최종 기각되었는데 그럼에도 혈통이 혈통인지라 이란 정계에서 거물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현 지도자인 하메네이에겐 스승님이자 국부인 호메이니의 손자라고는 하지만, 조부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본인과는 달리 개혁적인 성향인지라 차기 라흐바르는 커녕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꺼려지는 인물이라서 하산이 더 이상 정치적으로 무언가 해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하산 호메이니와는 달리, 호메이니의 또다른 손자이자 하산 호메이니의 사촌형 후사인 호메이니는 1959년생으로 자유주의 세속주의자로, 단순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면서도 현 체제를 지지하며 살아가는 하산과는 달리 할아버지가 세운 현 체제를 강하게 반대한다. 하산 호메이니의 아들이자 호메이니의 증손자인 1997년생 아흐마드 호메이니가 꽤나 미남이라 화제가 되었다.[* 할아버지이자 호메이니의 3남인 아흐마드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동명이인.] [[http://en.imam-khomeini.ir/en/c103_29022/egallery/Ahmad-Khomeini-son-of-Hassan-Khomeini|#]] 사실 호메이니부터가 이슬람 광신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후술하듯 숀 코너리와 비교될 정도로 외모가 서구적으로 생긴 편인데, 자손의 자손으로 대를 이어갈수록 후손들이 점점 서구적인 외모로 변해가고 있다. [[https://www.atlanticcouncil.org/blogs/iransource/three-decades-after-khomeini-s-death-his-clan-lives-life-on-the-sidelines/|#]] 다만 아흐마드 역시 증조부 호메이니, 할아버지 아흐마드, 아버지 하산처럼 성직자의 길을 걸어가는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